망했다. 비행기가 원격지 주기장에 섰다. 9시 30분 랜딩이라고 했을 때는 그래도 기대했다. 10시 출발이니까, 늦는다고 연락도 해뒀으니까. 문 열리자마자 달리면 그래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했다. 짐은 내일모레 어떻게든 받고 몸이라도 먼저 서울에 가자고 했다. 이제는 진짜 집에 가고 싶었다.
빠르게 램프 버스가 와서 섰으나 버스 안에 사람이 들어차려면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달리며 마주친 많은 이들이 친절히 게이트도 알려주고 수속도 먼저 하게 해줬지만, 그렇게 도착한 게이트엔 항공사 직원들만 남아 있었다. 너희 틀림없이 제네바에서 왔겠구나. 안타깝지만 게이트 닫혔어...
램프 버스에서 내려 달리기 전 파트너와 여태 우리가 달리기를 한 건 오늘을 위해서라고 농담도 하며 정말 목에서 피 맛이 날 정도로 뛰었는데도 못 탔다. 우리는 게이트 앞에 주저앉아 숨을 고르면서 저기 어디 가면 대체 편이랑 숙박, 택시 등을 안내해 줄 거라는 직원들의 말을 들으면서 아주 잠깐 부정했을 뿐이다. 소마가 "지대로 유럽 당해버렸잖아."라고 한 게 머릿속을 맴돌았다. 진짜 항공기 지연으로 집에 못 갈 수가 있구나... 근처 자판기에서 물 한 병을 샀다. 유럽 공항 물값은 다 똑같구나, 2.4유로.



눈 떠 보니 로마 외곽의 한 호텔이다. 로마까지 올 생각은 없었는데... 아마도 관광이 지금보다 더 호황일 때 지어졌을 것으로 보이는 미국식 호텔 지구는 지금 이 호텔을 포함하여 몇 개만 남아 운영 중이었다. 조식 제공 옵션이라 내려가 아침을 챙겨 먹었다. 우습게도 여태 먹었던 호텔 조식 중 가장 맛있었다.


보습을 할 수 있는 물건이 핸드크림뿐이라 씻고 핸드크림만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발랐다. 옷도 양말도 속옷도 어제 그대로. 맨몸으로 남아 짐도 가벼웠다. 숙소에서 트라스테베레까지는 기차로 10분 정도. 될 대로 되라 이제 집에만 가면 더 바랄 게 없다는 마음에 홀가분한 기분. 날씨는 좋고. 어쩌면 제일 즐거웠던 산책이었는지도.














서울 온 지 일주일이 다 되어 가는데 시차 적응은 아직이다. 낮밤이 바뀐 정도가 아니라 정말 내내 잠만 자고 있다. 시차 적응 중이라는 말로 얼버무릴 11월의 첫 주를 지나는 중....